십장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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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얘기중에 십년 조금 더 뒤에 내가 환갑이라는
절대로 닿지 않을것만 같던 곳에 다다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갑같은 이름이 붙은 나이는
무인도 같은 곳이어서
굳이 일부러 시간을 내고 발품을 팔아 배를 노저어 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갈 일이 없을것만 같은 어떤,, 미지의 땅이었는데......
새삼스레 엄청난 충격이 몰려와서
호흡을 가다듬고,
'자,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십년 밖에 안남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환갑이 되려면 십년이나 남았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면....? 응?'
뭐지, 구렁텅이 속으로 더 깊이 밀려들어가버린 이 느낌은?
30이 되었을때 아무런 충격이 없었고
40이 되었을때 살짝 세월을 느꼈던가,
45가 넘었을때 갑작스러운 위기감이 몰려왔었는데
이제 앞으로 한 발 딛기가 두려운 지경이 되었다.
왤까.
왜 나이를 먹는 다는 것에 민감해 지는 걸까.
45살 넘게 산 걸로 추정되는 거북이가 여기 있습니다.
50살 가까이 된 앵무새고요.
'헉, 그렇게나 많이 살았어?
겉으로 보기엔 모르겠는데?'
얼굴에 딱딱한 껍데기나 수북한 털이 없는 영장류는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이, 정확히 말해서, 노화가 드러나는 거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이어서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이 연식이라는 비밀을 감출수가 없어지는 거다.
그 나이라는 것이 동반하는 수 많은 편견들.
그 편견들이 사실상 좀 두려운거다.
나만 아니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존재로 나도 모르게 분류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데 애써 모른척 하고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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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작가 글이 담백하고 유쾌해서 몇 권 더 읽어 보려 했는데
대부분 절판이라 이북 수필코너를 이리저리 뒤적이다 발견한
백수린 작가의 '다정한 매일매일'이라는 수필을 읽는 중인데
가벼운 몇몇 스토리로 시작해서 중반 이후부터는
오래 응시하게 되는 문장들이 있어서 아껴보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명료한 것들이 더 두려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칼로 벤 자국처럼 선명한 말이나 확신에 찬 주장 같은 것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이상한 신념들.'
'붙잡으려는 순간 사라짐으로써만 존재하는 어떤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나는 무척 사랑한다.'
'시간이 과거를 망각의 어둠 속으로 침몰시키더라도 감각의 형태로 각인된 기억들은
살아남아, 현재의 우리가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사실.'
'냄새처럼 흩어져버린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열차가 들어오면 아마도 나는 인파에 휩쓸리는 것에 지친 얼굴로 또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겠지.
어깨에 닿는 감촉이나 누군가의 냄새 같은 것이 오랜 시간을 살아남아 미래의 나를 언제고
다시 이 순간으로 불러오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