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나믹 마당 IV

.거미는

자기 몸보다 더 큰 파리를 잡던 날 밤에 야반도주하듯 거미줄을 깨끗이 치우고 사라졌다.
거미줄에 감겨서 옴짝달싹 못하는 파리를 거미는 오랫동안 꽉 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뭇 엄숙하고 잔인한 느낌이 들어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았었다.

찾아보니 간혹 거미들이 거미줄 성분을 비축해서 다시 사용할 목적으로 먹어버리는 경우도 있단다.

.다람쥐는

까만애는 몇 주전, 우연히 우리집에서 너트를 먹어보고 그 뒤로
거의 매일 같이 우리 집 주변을 맴돌았다.
안보이네, 하고 찾아보면 여지없이 마당 앞 큰 나무 둥치위에서 보호색을 띄고 늘어져 자고 있거나
옆옆 집 앞 나무에서 우리집쪽으로 달려오고 있거나
혹은 옆집 펜스위로 올라온 장미꽃이나 여린 나뭇 잎을 뜯고 있었다.

어디가서 데이트라도 좀 하지 하고 걱정이 될 지경이었는데
어느날, 갈색이 섞인 회색 애와 같이 나타나더니 그 뒤로 줄 곧 단짝 처럼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둘 중에 하나가 보이면 근처 1미터 내에 반드시 다른 애가 나타났고
회색애가 우리집에서 너트를 처음 먹던 날, 까만애가 난리를 부린 이후로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허기가 질 즈음에 까만애는 우리집으로, 회색애는 옆집으로 가서
먹이 소스를 가지고 다투는 일도 없었다.
그 즈음 옆집에서 무슨 일인지 땅콩을 마당에 내놓기 시작한 모양으로,
요 며칠, 회색 애는 펜스위에서 하루종일 땅콩을 까고 있고
까만애는 껍질을 안까도 되는 우리집 캐슈넛을 더 즐기는 듯 보였다.

하루종일 레슬링도 하고 서로 등도 긁어주면서 붙어다닌다.

낮잠을 잘 때도 둘은 옆 나무 가지에 나란히 누워 붙어 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들이 갑자기 비파나무 잎을 뜯기 시작했는데
옆집 꽃과 나뭇 잎들을 즐겨 먹던게 생각나서 이제 비파나무 잎까지 먹는구나하고 약간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는데

이 친구들이 그 다음 날 부터 나무 가지 위 어딜 봐도 없는 거다.
그러다 집 앞 나무 높은 가지에서 둥지 발견.

설마 설마 하고 지켜봤더니 회색 애가 머리를 빼꼼이 내놓는데 ㅎㅎㅎㅎ

그 날, 낮잠을 실컷 자고 둥지에서 내려와 너트와 물을 받아 먹고 기운을 낸 후
비파나무와 집 앞 나무 잎을 끊어다 부지런히 둥지를 다듬어 댔다.
비파나무는 잎이 다 큰 건 이 친구들 키보다 크고 질기기가 플라스틱 만큼 단단한데 그걸 어떻게 쓰려나 했더니
중간 사이즈정도 되고 난지 얼마 안되서 부드러운 잎 위주로 끊어다 쓰는 것 같았다.
(크고 멀쩡한 잎들이 덕분에 바닥에 많이 떨어졌다.)
둘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어찌나 부지런히 잎을 뜯어다 나르던지...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작업을 끝내고 지쳤는지 까만애는 나무둥치위에서 잠깐 쉬는 듯 하더니
그 뒤로 둥지로 들어가 자는지 볼 수가 없었다.

동성의 다람쥐 여러마리가 둥지를 같이 짓고 사는게 평범한 일인가 해서 찾아봤더니
본래 다람쥐는 혼자 둥지를 짓고 사는데
형제 자매끼리는 첫 집을 같이 짓는 경우가 있고
자매가 아니더라도 암컷끼리 추운 겨울에는 체온 유지를 위해 둥지를 공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단다.

우리가 이 친구를 처음 봤던 때가 아마 태어나서 6-8주 정도 되서 처음 어미의 둥지를 벗어난 때인 것 같고
그 뒤로 2-3주 정도 지났으니 첫 집을 연습삼아 지어보는 시기인 것 같았다.

다람쥐들은 보통 주 활동 반경안에 집을 여러개 지어놓고 낮에 쉬기도 하고 밤에 자기도 한단다.

둥지를 만든 후 나무위에서 잘 볼수가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잘 크고 있는 것 같아서 왠지 대견섭섭하달까...

 

 

어제는 펜스위에서 회색애가 마당을 보고 있길래 너트를 좀 주려고 다가갔더니

회색애랑 까만애는 비파나무 위에서 한창 놀고 있는 거다.

회색애랑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이게 왠일인가 하고 한참 쳐다봤는데

나중에 보니 셋이서 같이 둥지를 다듬고 있는 거다.

어디 보니 6-7월에 새끼 다람쥐들이 부모를 떠나 첫 둥지를 만드는데 어미가 가르쳐준단다.

오늘 다시 밥을 먹으러 왔길래 가만 봤더니 회색 애보다 살짝 덩치가 크고

젖자국이 살짝 보이는게 이 친구들의 어미인 모양이었다.